날짜: 2023-09-01 조회 수: 63
어떤 재해보다 끔찍한 지옥의 형벌
“캐나다에 산불이 심각하다던데, 괜찮으세요?”하며 저의 안부를 묻는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캐나다의 산불이 정말 심각하지만, 제가 있는 곳은 특별한 피해가 없었습니다. 늘 마음 써 주시고 기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캐나다의 산불이 정말 심각합니다. 산불이 마을로 번지는 모습을 사람들이 반대편 언덕에서 절망적으로 지켜보는 영상,
산불이 마을로 번져 마을 전체가 새빨갛게 불타는 것을 호수 속에서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 등, 끔찍하고 처참한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영상들을 보며 정말 끔찍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휴, 산지옥이 따로 없네. 그러나 이 끔찍함도 하나님의 심판과 비교조차 할 수 없겠지.’
예수님은 지옥이 다음과 같은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애원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눅 16:24),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으며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는 곳(막 9:48~49),
눈을 뽑아버리고 팔을 잘라버려서라도 꼭 피해야만 하는 곳(마 5:29~30),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며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곳(계 14:10~11),
예수님은 지옥이 이런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리차드 벡스터가 지옥에 고통에 대하여 묘사한 말이 늘 기억에 남습니다,
“지옥의 고통 중 가장 심한 고통은 그 고통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수천만 세대가 지나도 그 고통은 첫날처럼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에녹, 므두셀라, 노아가 승리하는 삶을 산 이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이,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고문하시겠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은 ‘천국의 축복을 선택할지’ 아니면 ‘지옥의 형벌을 선택할지’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모인 사람들도 스스로 천국을 선택한 사람들이고, 지옥에 모인 사람들도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공정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죄를 눈감아 주시겠습니까?
이상하게도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벌하십니까?”라고 질문하기는 좋아하고,
“공의의 하나님이 어떻게 죄를 용납하십니까?”라고 질문하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고문하시겠어?”라는 물음의 대답보다, 그 물음 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놀라운 이기심’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축복에 대한 설교는 사랑하지만, 심판에 대한 설교는 싫어합니다.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행복한 메시지만 설교하며 지친 자신을 일으켜주길 기대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힘을 얻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내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좋아하지만,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생각하기조차 싫어합니다.
그래서 아끼는 죄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그 죄와 동거하며 삽니다. 죄짓고 허탈해하고, 또 죄짓고 허탈해하는 삶을 반복하며 삽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반만 믿는 것입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말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모두 바라볼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들’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심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히 12:28~29).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고, 에녹은 아담이 622세일 때 태어났습니다. 에녹은 아담의 칠대손이지만 아담과 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러니 분명히 에녹은 아담으로부터 직접 ‘창조주 하나님’, ‘에덴 동산’,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등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겁니다.
얼핏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에녹은 오랜 옛날 사람이라 매우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은 세상을 살았을 거야.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기도 쉬웠을 거야.’
그러나 사실 에녹은 홍수 심판을 눈앞에 둔 극도로 타락했던 때를 살았습니다.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창 5:2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히 11:5)”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진노하셔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실만큼 죄로 가득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에녹이 하나님의 경고를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로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정확히 ‘창을 던지는 자’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입니다.
므두셀라의 손자가 바로 노아입니다.
노아도 방주를 짓기 전부터 그리고 방주를 짓는 내내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로부터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겼을 겁니다.
므두셀라가 969세로 죽던 그 해에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겼던 노아와 노아의 가족만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에녹, 므두셀라, 노아, 모두 죄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마음 깊이 새기고,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으로 나누어집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정말 사실이고,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도 사실이고, 선포하신 상과 벌도 모두 사실이고…
이 모든 하나님이 말씀들이 다 사실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될 때가 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끝 날’에 가서야 알게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심판을 마음에 새기며 사는 일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겔 33:4).
동시에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5:20이하)
지금 이 순간에도 구원의 문은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이 영원히 열려있지는 않을 겁니다.
노아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니...
요즘은 원주민 마을 안이든 밖이든 지옥의 대한 말씀을 전하면 ‘너무 낡아 빠진 구식 이야기를 아직까지도 믿는 바보스럽고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곤합니다.
노아도 이런 취급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노아가 받던 취급을 내가 받는다니, 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입니까!
더 담대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길 원합니다.
원주민 마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을이 되길 기도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원주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길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8월에는 특별한 일 없이 평소와 같이 ‘한국 음식 나눔 선교’, ‘무료 바자회 및 노방 전도’, ‘원주민 가정 심방’을 하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9월 세째 주일부터는 잠시 멈췄던 ‘폴롯엑 보호구역 주일학교’도 다시 시작될 예정입니다. 원주민 선교의 문이 더욱 활짝 열리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케이프 브레튼 섬에서
이근권 목사 드림
이근권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성육보육원&노인요양원 원목실 담임,
에스카소니 선교, (일산)제자교회를 담임하였고,
현재는 에스카소니 & 폴롯엣 보호구역 원주민들과
케이프브레튼 한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