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브레튼 케이프 브레튼 섬, 선교지에서 드리는 10월의 편지

날짜: 2022-10-01 조회 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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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 초자연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M이라는 원주민은 심각한 마약중독자입니다. M의 입과 손에서는 늘 심하게 찌든 담배와 마리화나 냄새가 납니다. 

저의 손이 M의 손에 살짝만 닿아도 끈적끈적한 느낌과 함께 저의 손에서도 악취가 묻어납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저를 환영해주지 않는데, M은 저를 만날 때마다 격하게 환영해줍니다. 만나면 늘 포옹을 한 후, 제 볼에 뽀뽀까지 합니다. 

인간적으로 M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뽀뽀 후 저의 볼에서 나는 악취는 정말 반갑지 않습니다.

 

어느 날, M과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저는 ‘올 것이 왔구나’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M이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를 격하게 환영하기보다, 보자마다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M이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아들이 집을 나간지 2년이 넘었습니다. 너무 걱정되고 또 보고싶습니다. 아들을 위해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제가 M의 손을 잡고 M의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느낌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눈은 떴더니, M은 기도하지 않고 저를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M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뭘 봤습니까?”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예?” M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기도 중에 내 아들은 봤습니까? 내 아들을 못 봤으면, 간판 또는 아무 거나 본 것을 말해 주십시오.” 당황해하는 저에게 M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 것도 못 봤나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네. 아무 것도 못 봤는데요.” 

M은 너무나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라면서..."

 

M만이 아니라 많은 원주민들이 초자연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서 ‘정신차려라(깨어나거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제가 예수님을 잘 믿겠습니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원주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에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것은 원주민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연과 자연의 질서를 만드신 이유는 ‘무시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초자연적인 것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도 역사하십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도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은 자연을 훨씬 뛰어넘는 분이시기 때문에 지금도 뜻하신다면 얼마든지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의 외증조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그리고 저 또한 초자연적인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한편,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자연’과 ‘자연의 질서’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자연과 자연의 질서를 창조하신 이유는 ‘무시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과 자연의 질서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음성과 영적인 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육성으로 듣길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안 들리지만 나의 귀에는 우뢰와 같이 들리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적인 눈으로 예수님, 천사들, 그리고 초자연적인 모습들을 보길 원합니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직접 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니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또한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롬 8:5~6)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성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길 원하지만, 

성경은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는 방법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생각이 다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은 아닙니다. 

사람 안에는 ‘마귀가 주는 생각’도 있고,육신의 생각’도 있고,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도 있습니다.

 

제가 선교를 오기 전 고아원 원목실을 담임할 때 일입니다. 

은이(가명)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은이는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고아원으로 도망온 아이였습니다. 

은이는 저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차에 치어 길바닥 납작하게 말라죽은 동물 시체처럼, 아빠가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평생동안 아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어느 날, 은이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미워서 기도할 내용조차 없는데, 계속 아빠 생각이 났습니다.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있는 은이 마음속에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곧 음성, 감동)이 있었습니다. 

은이야, 나는 네가 아빠를 용서했으면 좋겠다.” 

은이는 펑펑 울었습니다. 은혜 받아서 운 것이 아니라, “아빠를 용서했으면 좋겠다”라는 성령의 음성이 너무 싫고 분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사람이 차에 치어, 길바닥에 납작하게 말라죽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상상도 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은이 안에 이런 생각은 누가 주는 걸까요? 

바로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은이 안에는 ‘육신의 생각’도 있습니다. 

나는 아빠를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을꺼야”라는 생각은 은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감정을 다 거스르며, 너무 싫어서 눈물이 펑펑나는데도 불구하고, 은이 안에 들리는 한 음성(감동)이 있었습니다. 

은이야, 나는 네가 아빠를 용서했으면 좋겠다.” 은이 자신은 너무나도 싫은데도 불구하고, 누가 이런 생각은 은이 마음속에 부어주시는 걸까요?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음성)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본다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영적인 눈이 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 천군 천사들, 그리고 귀신들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뜨이면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가 왜 죄인이야!”하며 몹시 불쾌해했지만, 영적인 눈이 뜨이면 ‘죄로 인하여 더럽고 추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뜨이면 성령의 역사하심도 보게 됩니다. 

나를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나왔든지 무거운 마음으로 나왔든지, 예배의 자리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 자리에 나아왔다 하더라도 “그래도 주일날 예배 드려야지!”라는 마음에 순종하여 나아왔다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여 나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그래도 예배 드려야지!’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그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돈의 귀중함은 불신자들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돈의 가치를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께 헌금 드려야지”라는 성령의 음성(감동)에 순종함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헌금 드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교회에 헌금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미쳤다”고 욕합니다.

 

선교도 그렇습니다. 물론 그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 사람들도 남는 돈 약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남는 돈 약간을 남에게 적선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일입니다. 기도하고, 희생하고, 낮아지고, 섬기며,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수고하는 일, 희생하는 일, 낮아지는 일, 섬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을 감당하는 것은 “맡기신 사명에 순종해야지!”라는 성령의 생각(음성)에 순종함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 않는 사람들은 선교하는 일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선교하지 말라고 비판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누가 교회를 세우는지’를 꼭 보셔야만 합니다. 

교회는 목사가 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돈 많은 교인이 세우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님이 세우십니다. 

교회 세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기도와 수고와 고민과 재정이 들어갑니다. 수고스러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특히 나를 위한 일이 아닌 곳에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감정과 과정을 거스르며, 오직 성령의 감동에 이끌림 받아 많은 희생을 치르며 세워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세운 것 같지만, 그 배경을 영적인 눈으로 들여다보면 성령의 감동으로 세워진 곳이 교회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세워진 곳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하나님의 명령대로 세웠을 때, 교회가 우리를 살립니다. 교회가 내 자녀들을 살리고, 교회가 내 가정을 살리고, 교회가 나를 살립니다.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영적인 눈으로 봐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교회 안에만 계십니까? 도서관에도 있고 낚시터에도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을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밖에도 계십니다. 성경도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대하 6:18)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신 곳’(대하 6:20)이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건물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건물들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곳은 오직 교회 밖에 없습니다. 

육적인 눈으로 보면 교회는 한 건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신 곳’입니다.

 

예수님도 교회를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얼마나 교회를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내가 세웠다”(마 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거스르는 세력들을 ‘음부의 권세’라고까지 표현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5:25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토록 교회를 중요하게 여기신 이유는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가는 일을 ‘각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없이 각자 신앙생활을 한다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는커녕 개인의 믿음도 몇 세대 가지 않아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교인)에 문제가 많아”라고 말을 합니다. 

원래 교회는 문제가 많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죄인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교회의 문제들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 아니면 대책이 없는 죄인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회복시키시고, 일으키시고, 힘 주실 ‘성령님의 계획과 능력’을 바라봐야 합니다.

 

교회가 너무 많아”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많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 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더 많아져야만 합니다. 세상에 가득 넘쳐나야 합니다. 

진짜 문제는 교회수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넘쳐나는 교회들이 모두 다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많아도 너무 많은 교회들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희생과 섬김을 세상 사람들에게 실천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지 않겠습니까? 사람들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이고, 엄청난 축복인지를 영적인 눈으로 봐야만 합니다.

 

 

어떻게 물려받은 교회인지도 영적인 눈으로 봐야만 합니다. 

교회가 쉽게 세워진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엄청난 억압과 핍박 속에서 예수님, 사도들, 믿음의 조상들의 핏값으로 받은 소중한 유산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칼에 베이고 톱에 썰리면서 우리에게 물려준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우리만 쓰고 버리라고 준 유산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 소중한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엄청나게 소중한 유산을 더 튼튼히 세워서 물려주지는 못 할망정, 까먹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 가지 그럴싸한 이유로 교회를 소홀히 여긴다면, 다음 세대 또는 그 다음 세대의 우리 자손들은 모두 ‘예수님’ 그리고 ‘천국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더라도, 끝까지 예배가 드려지고, 

기념하여 지키라”라고 명령하셨던 성례전이 행해지고, 복음이 선포되고, 

생명을 구원할 선교 활동이 이어지는 곳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학교, 병원, 마트가 이 일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의 명령을 붙들고 있는 곳은 오직 교회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교회(교인)는 없습니다. 아무리 내 마음에 안 들어도 함부러 비판해서는 안 될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

 

성령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십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입니다. 

세상이 극도로 타락하여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방주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노아와 가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는 세상이 노아의 시대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을 것이다”(눅 17:26 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와도 같고 ‘노아의 시대’와도 같은 때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교회(방주)를 세우라!”는 것이다. 교회가 곧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육성으로 각 개인에게 “교회를 세워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교회를 세워라”라고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교회가 나를 살리고, 내 자녀들을 살리고, 내 남편과 아내를 살리고, 내 지역을 살립니다. 그리고 교회가 선교지를 살립니다.

선교편지를 받으시며 함께 기도해주시는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교회를 튼튼히 세워나가시길 축원합니다.

또한 이곳에도 소중한 교회가 원주민들을 위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케이프 브레튼 섬에서

이근권 목사 드림

 

이근권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성육보육원 담임, 에스카소니 선교, (일산)제자교회를 담임하였고, 

현재는 에스카소니 & 폴롯엣 보호구역 원주민들과케이프브레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 Cape Breton 복음학교

https://youtu.be/ImeNDO2U140

* 성숙한 그리스도인

https://youtu.be/Kn0y4kwm7Qo

* 날마다 행복한 그리스도인

 

https://youtu.be/K1AMY3Nl8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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